우리역사

[스크랩] 于山國과 鬱陵島

행복한 산비둘기 2017. 8. 9. 16:23

그런데 우리 나라 성씨 중에 鮮于라는 성씨가 있다.


本貫은 太原 하나 뿐이다.

타이위안 시 지도

                                   太原


선우씨는 청주한씨·행주기씨와 함께 기자에서 연원을 찾고 있다.


선우씨의 유래는 箕子가 箕子朝鮮을 세운 뒤 큰아들 송을 장혜왕에 봉하고

둘째 아들 중을 于山國에 봉하여 나라를 세우게 했으므로,

朝鮮과 우산국에 있는 자손들이 선과 우 자를 따서 성을 삼았으며

기자의 출신지 태원을 관향으로 삼았다고 한다.


이것으로도 기자 조선의 위치는 山西省임을 증명 하는 것이다.


그런데 기자의 둘째 아들이 우산국에 봉해 졌다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가?


만약 기자 조선이 산서성에 존재 한다면 <삼국사기>의 우산국 즉, 울릉도는 어찌되는 건거?


<삼국사기>우산국의 기록을 점검해 보자 .


卷四 智證麻于十三年夏六月條


于山國征服、歳以土宜爲貢、于山國、在溟州東海島、或名鬱陵島、地方一百里、

恃嶮不服、伊喰異斯夫、爲何琵羅州軍主、謂于山人愚悍、難以威來、

可以計服、乃多造木偶師子、分載戰船、抵其國海岸、

誑告曰、汝若不服、則放此猛獸踏殺之、國人恐懼則降,


우산국은 명주동쪽 바다의 섬이며 혹은 울릉도라고 한다는 것이며

이사부가 불복하는 울릉도 사람들에게 나무로 깍아 만든 사자를 풀어 놓겟다고 하니까

그제서야 복종을 하엿다는 기록이다.


신라는 무슨 이유로 동해 바다의 조그만 섬인 울릉도를 복속 시키려 애를 썼을까?


오히려 문명과 단절된 울릉도 사람들이 먼저 와서 머리를 조아리면서

복속을 간청해야 하는 것이 순서 아닐까?


또한 신라가 그토록 영토가 아쉬웠다면 대마도나 일본 정벌이 우선 아니였을까?


또한 사자를 본 일이 없는 울릉도 사람들이 어찌 사자가 무서운 동물인지 알고

두려워서 항복을 햇단 말인가?


鬱陵(울릉)이라는 漢字를 점검해 보자


鬱이라는 글자의 유래는 천자나 왕이 기거하는 城안의 빽빽한 기와집을 보고

답답한 마음을 묘사한 글자라는 것이다.


陵이라는 글자 역시 훗 날에는 언덕이라는 뜻으로 쓰이자만

글자가 만들어지는 최초의 의미는 임금의 무덤을 뜻하는 글자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울릉이라는 말은 고도로 밀집된 궁실과

황제나 왕이 사는 도시를 말하는 것임을 알 수 있는 단어인 것이다.


즉, 외딴섬인 울릉도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한자의 조합인 것이다.


溟洲의 溟이라는 글자에도 관심을 가져 보자.


暝이라는 글자는 어둡다는 뜻으로 쓰이지만 원래는 북쪽 끝이라는 의미의 글자이다.


지금의 강릉의 옛 지명이 溟洲라고 알려져 있다.


三國史記의 강릉 명주를 인정 한다면

강릉 명주는 적어도 512년 이전에 존재 햇던 지명일 것이다.


그렇다면 기자의 우산국과 신라의 우산국은 별개의 지명인가?


이사부가 울릉도를 정벌햇다는 때는 신라 지증왕때라는 것이며, 512년이라고 한다.


필자는 660년 백제 멸망 이전에는 신라와 한반도는

전혀 관계가 없는 나라라고 주장하는 사람이다.


만약 신라가 512년에 한반도에 존재 했다면 필자의 역사는 처음 부터 모두 거짓이다.



출처 : 붉은까마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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