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무어사는 조선의 특사라는 직책이다.- 그런데 중국 절강성에 조선순무어사가 존재했다. 절강이 조선땅이란 이야기
순무어사
조선조 때, 지방에 변란이나 재해가 있을 때 왕명으로 두루 돌아다니며 사건을 진정시키고
백성들을 위로하여 평안하게 하는 특사.
– 법률용어사전,
고전번역서 > 서애집 > 서애선생문집 제3권 > 주문 >왜(倭)의 정세를 진술하는 주문 신묘년(1591, 선조24)
조선 국왕 신 성휘(姓諱)는 삼가 왜의 정세에 관한 일을 아룁니다.
만력(萬曆) 19년(1591) 8월 23일에 왜의 정세를 정탐하는 일에 관한 요동 도사(遼東都司)의 자문을 받았습니다. 거기에 이르기를, 금년 8월 12일 진시(辰時)에 흠차 순무요동지방찬리군무 도찰원우첨도어사(欽差巡撫遼東地方贊理軍務都察院右僉都御史)의 안정(案呈)을 받건대, 금년 8월 8일에 직방청리사(職方淸吏司)의 안정에 의한 병부의 자문을 받으니, 다음과 같습니다.
살펴 알았습니다. 근일 공이(貢夷)가 왜흔(倭釁)을 미리 아뢰어 기의(機宜)를 방비하라고 부보(附報)한 일에 대한 복건 순무(福建巡撫)의 제본(題本)에, “유구국(琉球國) 세자(世子 상녕(尙寧))가 사신을 보내어 조공을 바쳤는데, 그 나라 장리(長吏) 정주(鄭週)가 부보(附報)한 인신 찍힌 공문 속에 ‘왜왕 관백(關白)이 일본 66주를 통합하고 조선을 쳐서 이겼으며, 사신을 유구에 보내어 항복하기를 강요하였다. 또한 각주(各州)로 하여금 배를 만들고 군사를 모으게 하며, 내년 9월에 명을 치겠다고 큰소리쳤다.’ 하였습니다.” 하였으므로, 이미 병부가 복건ㆍ절강ㆍ직례(直隷)의 제독 수비에게 회답 공문을 보내었습니다.
이제 다시 절강 순무어사(浙江巡撫御史)가, 왜이(倭夷)의 긴급한 군사 정세라고 치보하는 제본에 근거하여 독무아문(督撫衙門)을 신칙하여 엄히 정탐하고 미리 방비하여 후환을 막게 하라는 일에 대한 제본(題本)을 받아 보니, “유구에서 돌아온 복건 사람 진신(陳申)의 보고에 의하면, ‘일본 왜노인 관백이 주군(主君)을 죽이고 왕이라 하고, 유구와 조선을 석권하고 명을 병탄하려고 음모하였다. 17년(1589, 선조22) 3월에는 스님[和尙]을 유구에 보내어 땅과 금을 바치고 조공하여 봉삭(奉朔)하기를 강요하였으나 유구국 세자가 굳이 버티어 굽히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또 ‘18년 4월에는 군사를 일으켜 조선을 쳐 이겨서 3백 인의 내항자(來降者)를 얻었고, 일본에는 아직도 만도(萬島) 대국의 장자가 그 아비를 죽이고 와서 항복하고 있으며, 관백은 스스로 하늘의 도움을 입어 몸소 66주를 다스리는 주인이 되었다.
순무어사는 조선의 왕명으로 난을 진정시키던 왕의 특사이다. 절강 순무어사라면 절강지방의 난을 진정시키기 위해 조선에서 보낸 왕의 특사이다. 어찌 외국의 난을 진압하기 위해 조선의 특사를 보내리오, 그 땅이 조선왕이 다스리는 지역이기에 그런것이다.- 러브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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