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역사

[스크랩] 三韓, 그 위치 논리의 모순

행복한 산비둘기 2017. 9. 5. 17:19


필자가 역사를 조금 이해하기 시작할 무렵  

삼한에 관한 부분이 가장 이해 하기 어려 웠고

최근 까지도 설명이 어려 웟다.


역사 초년생의 짐작이지만 三韓은 長江 아래 인것 같은 심증은 갔지만

왜 삼한의 위치가 장강 아래가 될수가 있는지 설명을 할수 없엇다.


<후한서>의 마한은 사방 4천리이며 56개의 나라가 존재 하며

시대로는 청동기 시대라는 것이다.


그야말로 우리 국사가 말하는 이 시기의 삼한은 하늘에서 선녀가 내려 올 수 있는 분위기의

뜬 구름 잡는 역사로 일관 하는데 <후한서>를 엮었다는 범엽은 도데체 한반도의 삼한을

어떻게 그렇게 세세히 알고 기록을 했다는 말인가?


한반도 전부를 합쳐도 사방 4천리가 되기에는 턱 없이 부족한데

그 옆에 진한과 변한 까지 존재 햇다는 한반도의 삼한.


우리 국사는 일제에 의해 역사의 프레임이 만들어 졌다.


일제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우리 국사 학자들은 어떤 근거를 가지고 삼한이

우리 역사라고 주장을 하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다만 <삼국사기>를 해석하는 방법인데 필자가 말햇듯이 <삼국사기>는 <구당서>를 motive로

쓰여진 역사이며 <구당서>는 사타 게열의 後晋에 의해 편찬된 역사서라는 것이다.


즉 "辰韓亦曰秦韓" "新羅國,本弁韓之苗裔也。라는 기록을 보듯이

신라의 역사를 따라 신라는 경상도의 남부에 존재하던 나라라는 역사 고정에 따라서

삼한을 무리하게 한반도 남부로 몰아 넣은 것이다.


일부 일본의 교과서는 아래와 같이 요동 반도에 삼한이 존재 했다고 한다.

秦韓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이제 한반도 삼한 그 논리의 모순을 분석해 보자.


관련 이미지欽定滿洲源流考의 三韓

滿洲에서도 동북부에 위치하고 있었다는 黑水靺鞨의 후예인 청나라 6대 황제 乾隆帝는

<欽定滿洲源流考>에서 자신들의 조상 국가로 三韓을 지목 한다.


그야 말로 肅愼(숙신/조선) 부터 청나라를 건국한 때 까지

黑龍江과 랴오허 일대를 벗어 나지 않은 文殊族이 자신들의 역사로 지목한 三韓이

어떻게 長江 아래에 나타날 수 있다는 말인가? 라는 의문


그리고 만약 三韓이 정말 韓半島에 存在 했다면 乾隆帝가 무슨 이유로

韓半島 南部의 三韓을 자신들의 역사로 지목하는 것인가? 라는 의문


또 하나는 수 많은 재야 사학자들이 지목하는 중국 대륙 북쪽에 존재하는 삼한과

기록속에 나타나는 삼한과의 괴리에 대한 의문


관련 이미지=辰韓

<북사>등은 "辰韓亦曰秦韓"라 했다.


즉 秦=辰韓이라는 말이며 秦의 위치가 진한라는 말이다.

秦韓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결국 秦의 위치에 진한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 하는 것이다.


아마도 辰韓이란 秦이 존재하던 어느 일부분을 의미할 것이며

변한과 마한 역시 진한의 위치에 따라 그 주변에 존재함을 의미한다.


배만한 대추와 오척이나 되는 닭 겨울에도 여름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기후

이런 것들을 종합해 볼때 마한의 위치는 장강 아래 즉 江南일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관련 이미지<後漢書>와 <三國志>의 三韓

<後漢書>와 <三國志> 에 등장하는 三韓과 우리 국사가 주장하는 삼한의 내용은 다르다.


그런데 우리 강단사학이나 재야 사학 모두는 정말 미련하게도

<後漢書>와 <三國志>에 등장하는 三韓을 우리 역사로 이해하는 착각을 하는 것이다.


이 마져도 삼한의 위치를 모두 한반도 남부로 몰아 넣고

비정을 하기도 하며 <後漢書>와 <三國志>에 등장하는 三韓과

중국 대륙 북쪽에 존재하는 것으로 설정 하기도 한다.


그런데 <후한서>와 <삼국지>에 등장하는 馬韓은 여름철에도 겨울 음식을 먹을수 있고

닭의 키가 오척이나 되고 대추가 배만하고 무덤과 같은 곳에 사람이 산다고 하는 것인데

도데체 이런 기록의 馬韓이 어떻게 滿洲와 韓半島에 존재할 수 있다는 말인가?


<후한서>와 <삼국지>에 등장하는 마한이 어떻게 우리 역사 일수가 있다고 생각하는지

그들의 머릿속을 필자는 정말 이해 할 수가 없다.


아마도 지금의 일본 역시 <후한서>와 <삼국지>에 등장하는 倭를

자신들의 뿌리 역사로 인식하면서 이 기준에 따라서

삼한은 한반도에 정착하는 비정을 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일본의 교과서가 모두 삼한의 위치를 한반도로 비정하는 것은 아니다.


일본의 일부 교과서는 馬韓을 장강 아래로 설정하는 교과서도 많다.


<후한서>와 <삼국지>에 등장하는 馬韓의 경우는 그 地境이 사방 4천리이며

56國이 마한을 형성하고 있다.


중국 고대 기록속의 나라를 설며하는 것을 보면

나라의 크기가 2천리를 넘게 설명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러나 유일하게 馬韓의 크기가 사방 4천리로 설명을 한다.


즉 마을 단위를 모두 나라라는 개념으로 기록한 것이다,


또한 진한 변한 역시 각각 12개의 나라로 형성 되어 잇다.


만약 이들 삼한이 한반도 남부에 존재헷다고 가정해 보자


궂이 이들을 삼한으로 구분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이며

교통과 정보가 원할 하지 않던 이 시기에 중국의 일개 역사가가

한반도 남부를 그토록 세세하게 알수 있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며 

코떡지만한 한반도 남부를 궂이 삼한으로 나누어 기록한 이유가 무엇인지

그게 더 신기하지 않은가?


<후한서>와 <삼국지>의 기록을 정확하게 읽고 그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후한서>와 <삼국지>의 삼한은 한반도에 잇었던 것이 아니라 중국 대륙 황하 아래

특히 마한은 長江 아래인 열대에 가까운 지역임을 알 수 있다.


지금의 일본은 倭의 본류를 지금의 長江 중하류로 지목하고 있으며

일본의 벼 재배 문명인 야요이 문명이 바로 장강 중하류의 倭라는 것이다.


즉 벼재배 문명은 장강 중류에서 부터 일본 큐슈와

한반도 남부로 전해졌다고 설명을 한다.


즉 <후한서>와 <삼국지>의 삼한 특히 마한은

지금의 長江을 중심으로 장강 남부에 존재햇던 것이다.


이런 사실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일본은 한반도 영유권을 주장하기 위한 수단으로

삼한을 한반도 남부로 몰아 넣고 역사를 왜곡하는 것이며 우리 일제 잔당 사학들은

배운게 도둑질이라고 일제가 남겨놓은 더러운 역사만을 되새김질 하는 것이다.


역사를 단 한번이라도 연구를 해 봤다면 있을 수 없는 말들을 하는 것이며

한마디로 골빈놈들이다,



출처 : 붉은까마귀
글쓴이 : 붉은까마귀 원글보기
메모 :